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에하라 고지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우에하라 고지는 아마추어 때부터 프로 때까지 국제전에 통산 25전 12승 '''무패''' 2세이브라는 기록을 남겼다. '''프로로 출전한 경기로만 제한'''해서 보더라도 '''10전 4승 무패 2세이브'''로 '승리의 보증수표'같은 존재로 국가대표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한국에는 2006 WBC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결선 토너먼트#s-1.2|준결승전]]에서 스플리터 낚시로 악몽을 선사한 투수로 유명하다. 이 덕에 팀은 탄력을 받아 WBC 초대 대회를 우승하였다. 하지만, 우에하라 개인의 성적은 한눈에 봐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는 있으나 일본의 프로 1군 선수가 선발된 대회에서 우에하라가 참여한 대회 중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본선 1라운드/A조 6경기|2006년 WBC]]를 제외하고는 팀은 메이저 대회에서 그닥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2004 아테네 올림픽/야구|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경우에 호주에 밀려 [[2004 아테네 올림픽/야구#s-7.1|4강전]]에서 탈락하고 [[2004 아테네 올림픽/야구#s-7.3|3,4위전]]에 가서 가까스로 동메달로 마친 경우나, [[베이징 올림픽/야구|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메달 굴욕을 맛본 것이 대표적이다. 아마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이 징크스는 유효함을 알 수 있다. [[1997년]] 8월 11일, 스페인 [[대륙간컵]]에서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쿠바]]를 꺾고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루기는 했지만,[* 당시 대표팀동료 중 한명이 (후에 요미우리에서도 같이 활약하는) [[다카하시 요시노부]]이다.] 이 외에는 번번이 한국의 벽에 가로막혔다. [[1997년]] 6월 대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한국전에서는 [[김동주(타자)|김동주]]한테 연타석홈런을 허용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고,[* 예선 한국전에서는 승리투수가 되긴 했었다. 이 경기에서도 김동주에게 홈런 1개 허용.] [[1998년]] 8월 이탈리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8강 한국전에서는 8회까지 '''탈삼진 13개''' 포함 1실점 호투했지만, 9회 대거 4실점하면서 동점을 허용했고,[* 9회종료 후 우에하라는 강판된다.] 이후 연장 10회 접전끝에 팀도 패배한다.[* 연장 10회 시작과 함께 (우에하라의 후속투수로) 올라온 투수는 '''야마무라'''이다.][* 최종스코어는 '''8대5'''로 한국 승리. 당시 한국타선은 [[최희섭]], [[홍성흔]], [[박한이]], [[신명철]] 등으로 구성되었다.][* 여담으로 이 대회 직후, 프로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이 허용되었다. 즉, 아마추어 선수들만으로 치뤄진 마지막 국제대회가 바로 1998년 8월 이탈리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이다.] 다만 [[1997년]] 8월 31일, [[홋토못토 필드 고베|고베 그린스타디움]]에서 열린 <애틀랜타올림픽 기념 4개국 친선대회> 한국전에서는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다.[* 최종스코어는 7대0으로 일본 승리.] 한편으로 이런 점은, 원조 한국킬러로 불린 [[노모 히데오]]와 묘한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노모 히데오|노모]]는 아마시절에 대결한 한국전마다 개인호투와 팀승리를 동시에 달성했다.[* 오죽하면 [[노모 히데오|노모]]가 프로에 진출한 1990년에 펼쳐진 [[북경 아시안게임]] 한일전 당시, 한국측 중계진의 고 [[하일성]] 해설위원이 중계 도중 노모의 프로진출로 한국타자들이 부담을 덜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북경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90년]]은 프로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던 시절이었다. 프로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이 허용된 시점은 1998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 때부터이다.] *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준결승 한국전 구원승.[* 일본이 0대1로 뒤진 7회 '''1사 만루''' 위기상황에서 구원등판해, 9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최종스코어는 3대1로 일본 승리. 이후 일본은 결승에서 미국에 패배하며 은메달을 차지한다([[노모 히데오|노모]]는 결승 미국전에서는 등판하지 않았다).][* 준결승 한국전에서 일본의 선발투수는 (후에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는) '''이시이 다케히로'''이다. 프로진출 후인 [[1992년]]에는 일본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다.][* 준결승 당시 상대팀인 한국은 선발 [[김기범(야구)|김기범]]-구원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가 이어던졌다.] * 1989년 8월 푸에르토리코 [[대륙간컵]] 예선 한국전 구원승.[* 2대2 동점상황인 5회부터 구원등판해 연장 12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최종스코어는 3대2로 일본 승리.][* 당시 한국 선발투수가 바로 [[구대성]]이었다. 연장 12회까지 완투했지만 끝내기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최종기록은 11.2이닝 3실점.] * 1989년 9월 한국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한국전 선발승.[* 1실점 승리투수.][* 반면 한국 선발투수인 [[구대성]]은 5회를 못 넘기고 강판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